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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Intro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샛노란 원피스를 입고 흐드러지게 핀 프리지아 한아름을 들고 있었다. 그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시니컬하게 입 꼬리를 올리며 나에게 말했다.


“……넌 참 순수하구나.”


나른한 한숨과 함께 내뱉은 그 말은 묘하게 상냥했다. 찬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지나 그의 검은색 수트 자락을 휘감았다.
나를 한번에 안아 올린 그에게선 옅은 담배 냄새와 함께 알싸한 플로럴 향이 났다.

그 때의 내 나이 열 세 살, 아직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어린 애였으며
그의 나이 스물 세 살, 담배에 중독된 어른이었다.






01.

사계(四季) ; early spring I



“이리와. 보고 싶었어.”


나를 향해 내밀어진 두 팔을 보면서 나는 어김없이 갈등했다.
코우 씨에게 서울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한 시간 뒤에 있을 오후 강의까지도 제치고 나온 주제에 망설이고 있다. 꼬박 일주일만이다. 패션 잡지의 화보 촬영이라며 훌쩍 뉴욕으로 떠나더니 그 동안 전화 한 통도 없었다. 뉴욕에 갔다는 사실도 코우 씨를 통해 알았다.
그가 원래 그리 친절한 사람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허전했다.


“뭘 그렇게 뜸을 들여?”


그의 미간이 장난스럽게 좁혀졌다. 일주일 만에 마주한 그는 여전히 거리낌없이 당당했다. 그의 잿빛 눈동자 너머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가 보였다.


“이상하잖아, 이런 건.”
“그만 튕기지 그래?”


그가 손을 뻗어 나를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나 망설이던 마음과는 다르게 내 몸은 반항 한번 없이 순순히 그의 품에 가만히 안겼다.
가끔 그가 이렇게 집에서 쉴 수 있는 날이면, 나는 그의 곁에서 그와 함께 했다.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듯이 꼭 껴안고 말이다.
나른한 한숨을 내쉬며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한 치의 틈도 없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 보면 내 몸 구석구석에 그의 향이 스며들었다.
그건 퍽 기분 좋은 일이었다.
혼자 집에 있을 때에도 그와 같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옅은 담배 냄새와 항상 같은 향수의 향내가 나를 안심하게 했다.
예전에, 기억도 희미한 어렸을 적에는 타인의 품에 안기는 걸 굉장히 좋아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애정 결핍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직업을 갖고 있는 부모가 그러하듯 아빠는 거의 곁에 없었고 엄마도 본인의 일로 분주했으니까.
포옹(抱擁)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무렵부터는 아무에게나 덥석덥석 안기지 않았지만, 그 만큼은 지금까지도 예외였다.


“이번 주 휴가야. 집에 가지 말고 계속 여기 있어.”


언젠가 해준이가 그와 나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다.
ㅡ그래서, 대체 너랑 그 사람은 뭐야?
내가 뭐라고 대답했던가. 그래, 이렇게 말했었지.
ㅡ습관. 고쳐야 되는데 고치기 싫은, 습관.


“엄마한테는 뭐라고 할까.”
“여기 있는다고 말해.”
“그럼 렌 씨한테도?”
“음, 글쎄.”


그와 이 집에서 단 둘이 몇 날 며칠 밤을 보낸다고 해도 포옹 이상의 스킨십은 없다. 하지만 역시 왠지 모를 죄책감이 뾰족한 가시처럼 나를 찔렀다.
습관이라 정의 내리고, 그냥 이렇게 지금처럼 흘러가게 내버려두면 되는 걸까.


“자고 가. 리주 씨한테 전화해, 여기서 자고 간다고.”


아마 엄마에게선 어렵지 않게 허락을 얻어낼 수 있을 테다.
큰 베란다 창 너머로 환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 막 개나리가 꽃봉오리를 틔울 무렵, 꽃샘추위의 매서운 바람과 어울리지 않는 봄 햇살을 느끼며 자켓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의 뜻대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이틀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의 내 나이 스물 다섯,
아직 첫 키스 경험도 없는 어린애였으며

그의 나이 서른 다섯,
무엇 하나 거리낄 것 없는 어른이었다.



-


두근두근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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